주택공급은 속도라는데, 인천 재개발·재건축사업은 왜 출발부터 늦어지는가
정부가 정비사업의 공급시차 단축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인천시 사전컨설팅이 정비계획 입안제안의 사실상 선행 관문으로 작동하며 주민에게 시간·용역비·자료작성 부담을 지우는 구조를 비판한다. 정비계획 수립과 행정적 조정은 주민이 아니라 입안권자와 결정권자가 담당해야 한다는 점을 제시한다.
― 정부의 ‘주택 신속공급’과 거꾸로 가는 인천시 사전컨설팅
■ 정부는 정비사업의 ‘시간’을 줄이겠다고 한다
정부가 8월 13일 「주택 신속공급 방안」을 내놓았다.
이번 대책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몇 만 호를 더 공급하겠다는 숫자만이 아니다. 정부가 주택공급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 자체가 보다 분명해졌다는 점이다.
핵심은 ‘공급시차의 단축’이다.
주택 수요는 금리와 소득, 시장 상황에 따라 빠르게 변하지만 주택은 계획에서 실제 공급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정부는 이러한 공급시차가 수급 불균형과 주택시장 불안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보고, 공급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눈여겨볼 부분은 재개발·재건축이다.
정부는 도심 공급 확대를 주요 정책축으로 설정하면서 2030년까지 수도권 재개발·재건축 약 23만4천호의 정상 착공을 지원하겠다는 목표를 내놓았다.
재개발·재건축을 일부 지역의 노후주택 정비사업 정도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의 실질적인 주택공급을 담당하는 주요 수단으로 보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정비사업의 절차 자체를 단축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기본계획과 정비계획 수립절차를 병행하고, 사업시행인가와 관리처분인가 관련 총회를 병행하며, 정비계획 입안요청 및 입안제안에 대한 동의를 조합설립 동의로 간주하는 등 중복되거나 순차적으로 진행되던 절차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보내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반드시 필요한 절차는 제대로 밟되, 중복되거나 병행할 수 있는 절차 때문에 정비사업이 멈춰 있는 시간은 줄이겠다는 것이다.
결국 ‘얼마나 공급할 것인가’와 함께 ‘얼마나 빨리 공급할 것인가’를 주택정책의 중요한 기준으로 올려놓은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지방정부의 행정도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 그런데 인천에서는 정비계획을 신청하기 전부터 1년이 흐른다
정부는 정비사업의 시간을 줄이겠다고 한다. 그런데 인천의 현실을 보면 정반대의 질문을 하게 된다.
왜 정비계획의 법정절차에 들어가기도 전에 주민들이 장기간의 사전절차를 거쳐야 하는가.
인천시는 주민이 정비계획 입안제안을 하려는 경우 사전컨설팅을 거치도록 운영하고 있고, 이 절차가 끝나야 정비계획 입안제안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주민이 선택적으로 행정의 도움을 받는 제도라면 말 그대로 ‘컨설팅’이다. 하지만 이를 완료하지 않으면 정비계획 입안제안 자체를 신청할 수 없다면 그 성격은 달라진다.
사실상 정비계획 입안제안의 선행 관문으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사전컨설팅은 법령에 정비계획 입안제안의 법정 선행절차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렇다면 법이 정한 신청절차 앞에 별도의 행정절차를 두고 그 완료를 사실상 신청의 조건으로 운영하는 것이 적정한지는 따져볼 필요가 있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사전컨설팅에서 요구하는 내용이다.
정비계획의 방향이나 정비구역의 적정성을 사전에 간략하게 검토하는 수준이라고 생각한다면 실제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현장에서는 정비계획 입안제안 단계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구체적인 건축도면과 경관계획을 비롯한 방대한 분야별 자료를 요구받는다. 분야에 따라 100쪽에 이르는 자료를 작성해야 하고, 60개가 넘는 관계부서와 협의를 거치고 그 과정에서 보완과 재협의가 반복되면서 1년을 훌쩍 넘기는 일도 발생한다.
그런데 더 본질적인 문제는 시간만이 아니다.
그렇게 검토하는 내용 중 상당 부분이 정작 정비계획을 수립하는 데 직접 필요한 사항인지 의문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지하주차장의 전기자동차 충전시설을 어떻게 설치할 것인지, 터파기 과정의 안전시설을 어떻게 할 것인지, 건축물의 세부적인 형태와 색채를 어떻게 계획할 것인지까지 입안제안 이전 단계에서 요구한다면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과연 정비계획 입안제안을 하기 전에 주민이 결정하고 협의해야 할 사항인가.
정비계획은 아파트 한 동의 상세설계나 공사방법을 정하는 계획이 아니다.
정비가 필요한 지역에 대해 정비구역의 범위를 설정하고, 토지이용과 정비기반시설의 배치, 건축물의 주용도·건폐율·용적률·높이 등 도시공간의 기본적인 구조와 밀도를 정하며, 향후 정비사업이 따라야 할 도시계획적 틀을 만드는 것이 핵심이다.
쉽게 말하면 ‘건물을 어떻게 지을 것인가’를 상세하게 설계하는 단계가 아니라 ‘이 지역을 어떤 도시공간으로 정비할 것인가’라는 기본적인 계획질서를 정하는 단계다.
그런데 입안제안을 하기도 전에 전기자동차 충전시설의 구체적인 배치나 터파기 안전대책, 세부적인 건축물 형태와 색채 등 후속 건축·사업시행 단계에서 구체화할 사항까지 요구한다면 계획의 단계와 검토의 시점이 뒤섞이게 된다.
그 자료를 만들고 협의하는 데 들어가는 시간과 용역비는 결국 주민이 부담한다.
더 큰 문제는 그렇게 1년을 훌쩍 넘겨도 정비계획이 수립된 것이 아니라는 데 있다.
그때서야 정비계획 입안제안을 신청할 수 있다.
정부가 오랜 정비사업 기간을 하루라도 줄이겠다고 하는 상황에서, 정비계획의 출발선에 서기 위해 다시 1년 이상을 사용하는 행정구조가 과연 지금의 주택정책 방향과 맞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 주민이 해야 할 일과 행정이 해야 할 일이 뒤바뀌어서는 안 된다
여기에는 시간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정비계획을 누가 수립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주민은 법령이 정한 요건을 갖추어 정비계획의 입안을 제안한다. 그러나 주민이 정비계획의 최종 수립권자나 결정권자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주민의 역할과 행정의 역할은 구별되어야 한다.
주민제안은 정비계획을 완성해 행정청에 납품하는 절차가 아니다. ‘우리 지역에 정비계획을 수립해 달라’고 법령에 따라 행정에 제안하는 출발점이다.
물론 인천시가 광역적인 도시계획 관점에서 검토해야 할 사항은 있을 수 있다. 당연히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그 방법이 반드시 주민에게 별도의 사전컨설팅을 먼저 이행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하는지는 다른 문제다.
도로체계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면 정비계획을 수립하면서 검토하면 된다. 공원이나 공공시설이 필요하다면 정비기반시설 계획에 반영하면 된다. 주변 지역과의 연계가 필요하다면 광역적 도시공간 구조를 검토해 입안권자에게 의견을 제시하고 정비계획에 담으면 된다.
주민에게 정비계획 입안제안 전에 방대한 자료를 만들어 오고 수많은 관계부서와 협의해 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주민이 법령에 따라 입안을 제안하면 입안권자가 정비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사항을 검토하고 조정하면 된다.
인천시가 광역적 도시계획 차원에서 의견이 있다면 그 과정에서 제시하고 필요한 사항은 정비계획에 반영하면 된다.
결국 문제는 간단하다.
주민에게 ‘이렇게 계획해서 신청하라’고 할 것이 아니라, 주민이 법령에 따라 입안을 제안하면 입안권자가 정비계획을 수립하면 된다.
정비계획을 계획하고 조정하는 것은 주민에게 떠넘길 일이 아니라 행정이 해야 할 일이다.
여기에 또 하나 짚어야 할 문제가 있다.
사전컨설팅을 정비기본계획에 담아 운영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절차가 곧 법적 근거를 갖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정비기본계획은 정비사업의 방향과 기준을 제시하는 계획이다. 정비계획을 수립하는 행정의 지침으로 기능하는 것과 주민에게 새로운 신청절차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정비기본계획에 어떤 절차를 넣었다고 해서 법령에 없는 새로운 신청요건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주민이 정비계획 입안제안을 하기 위해 반드시 사전컨설팅을 거쳐야 하고, 이를 완료하지 않으면 신청할 수 있도록 운영하려면 먼저 물어야 한다.
그러한 제한을 주민에게 부과할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정비기본계획에 들어 있으니 적법한 절차라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순서가 뒤바뀐다.
법적 근거가 먼저이고 정비기본계획은 그 법적 틀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더구나 이 절차가 정비계획 단계와 직접 관계가 적은 세부사항까지 요구하고 주민에게 상당한 시간과 비용을 부담시킨다면 더욱 그렇다.
무엇을 위한 절차인지, 왜 반드시 필요한지, 그 부담에 상응하는 효과는 무엇인지, 그리고 주민에게 이를 의무적으로 요구할 법적 근거는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목적과 필요성, 효용성 그리고 법적 정당성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정비기본계획에 적혀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절차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결국 문제는 사전컨설팅 기간을 1년에서 6개월로 줄이는 데 있지 않다.
사전컨설팅을 왜 정비계획 입안제안의 사실상 선행요건으로 두어야 하는지부터 다시 물어야 한다.
중앙정부는 법정절차끼리 겹쳐서라도 정비사업의 시간을 줄이려고 하는데, 인천에서는 법정절차가 시작되기도 전에 또 하나의 절차를 두고 있는 셈이다.
■ 이제 인천시에 묻고 싶다
인천시는 최근 균형발전부시장 체제를 마련하는 등 원도심 활성화를 위한 조직을 강화했다.
그 취지가 원도심과 신도시의 균형발전을 강화하고 원도심 활성화를 속도감 있게 추진하는 데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정비사업의 출발점부터 다시 살펴봐야 한다.
인천시에 묻고 싶다.
사전컨설팅이라는 이름으로 주민에게 1년이 넘는 시간과 적지 않은 용역비, 방대한 자료작성과 관계부서 협의의 부담을 지우면서 주민에게 돌아오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
주민들은 특별한 혜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정비사업을 무조건 허용해 달라는 것도 아니고, 도시계획적 검토나 심의를 생략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법령에 따라 정비계획 입안제안을 신청하고, 입안권자가 필요한 검토와 조정을 거쳐 정비계획을 수립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그 신청을 하기 전에 별도의 사전컨설팅을 완료하도록 요구하는가.
더구나 그렇게 긴 절차를 마쳐도 정비계획이 수립되는 것이 아니다. 그제야 정비계획 입안제안을 신청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 사전컨설팅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가.
정부가 내놓은 신속공급 대책까지 바라지도 않는다.
기본계획과 정비계획을 병행하고 여러 절차를 겹쳐 사업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여 달라는 요구부터 하는 것도 아니다.
주민이 해야 할 일은 주민에게 맡기고, 행정이 해야 할 일은 행정이 하면 된다. 적어도 행정이 정비사업의 출발선 앞에 불필요한 장벽을 하나 더 세우지는 말아야 한다.
신속하게 해주는 것에 앞서 불필요하게 늦추지 않는 것, 그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정부가 주택공급을 위해 정비사업의 시간을 하루라도 줄이려는 지금, 인천시도 자신이 만든 절차부터 돌아봐야 한다.
1년을 보냈는데 정비계획 입안제안 신청도 하지 못하는 행정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