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개발·재건축, 행정이 세울 계획을 왜 주민이 먼저 준비해야 하나
정비계획은 주민이 아니라 행정이 세우고 책임져야 할 공공계획이다. 인천시 사전컨설팅이 주민의 입안요청·제안 전에 세부 건축·경관계획을 요구하면서 계획의 선후관계를 뒤집고 민간업체 의존을 앞당기는 구조를 비판하고, 광역행정의 계획책임 정상화를 제안한다.
■ 정비계획은 주민이 아니라 행정이 세우는 계획이다
재개발·재건축을 하려면 먼저 어느 지역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 기본적인 계획을 정해야 한다. 이것이 정비계획이다. 주민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구청장이 정비계획을 입안하고 인천시장이 이를 결정해 정비구역을 지정한다.
이 과정에서 구청과 인천시가 미리 계획의 방향을 협의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과거에도 구청이 정비계획을 세울 때 인천시의 전체적인 정비 방향에 맞는지 확인하고 필요한 사항을 협의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러한 행정기관 간 협의와는 다른 방식의 사전컨설팅이 운영되고 있다. 과거에는 구청이 정비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인천시와 협의했다면, 지금은 주민이 정비계획을 요청하거나 제안하기 전에 먼저 인천시의 검토를 거쳐야 한다.
정비계획은 주민의 제안이 있어야만 행정이 세울 수 있는 계획이 아니다. 어느 지역을 정비할 필요가 있는지 판단하고 필요한 정비계획을 입안하는 것은 본래 행정이 해야 할 일이다. 주민이 정비계획의 입안을 요청하거나 제안할 수 있다고 해서, 정비계획을 세워야 할 행정의 책임까지 주민에게 넘어가는 것은 아니다.
행정이 필요한 정비계획을 제때 세우지 않을 경우 주민도 정비계획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 입안요청과 입안제안은 주민도 정비계획의 입안을 요구할 수 있도록 열어둔 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행정이 먼저 정비가 필요한 지역을 찾아 계획을 세우기보다, 주민이 먼저 나서야 정비계획 논의가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행정을 보완하기 위해 마련된 주민의 요청과 제안이 오히려 정비계획을 시작하는 사실상의 출발점이 된 것이다.
■ 주민의 입안권 앞에서 계획의 순서가 뒤집혔다
행정이 먼저 정비계획을 입안하지 않으면 결국 주민이 나설 수밖에 없다. 그런데 주민이 정비계획의 입안을 요청하거나 제안하려면 그에 앞서 사전컨설팅부터 거쳐야 한다. 법은 일정한 경우 주민에게 입안요청과 입안제안의 길을 열어두고 있다. 그런데 행정이 먼저 계획하지 않아 주민이 나서자 그 앞에 다시 별도의 관문을 세운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사전컨설팅에서 요구하는 내용이다. 정비계획은 도로·공원 같은 기반시설과 건축물의 용도·밀도 등 해당 지역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지 기본적인 틀을 정하는 계획이다. 건축·경관 등 세부계획은 정비계획이 정해진 뒤 그에 맞춰 구체화하는 것이 순서다.
그런데 지금은 정비계획이 결정되기도 전에 주민에게 건축·경관 등 세부계획부터 만들도록 하고 이를 사전컨설팅에서 검토하고 있다. 문제는 사전컨설팅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데 있지 않다. 정비계획과 세부계획의 선후관계가 역전되어 있다는 데 있다. 정비계획에 따라 용도와 밀도, 높이, 기반시설의 규모와 배치가 달라지면 세부계획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정비계획을 먼저 정하고 그에 맞춰 세부계획을 만드는 것이 순서다.
■ 주민보다 인천시가 먼저 계획해야 한다
건축·도시계획·경관 등의 세부계획은 주민이 직접 만들 수 없다. 결국 주민은 정비계획조차 결정되지 않은 단계에서 전문업체에 의존해 세부계획을 준비하고 그 비용까지 먼저 부담해야 한다. 문제는 비용만이 아니다. 정비사업의 기본적인 방향이 정해지기도 전에 주민과 민간업체가 먼저 사업을 준비하게 된다. 사업 초기부터 주민과 업체가 하나의 이해관계로 묶일 수밖에 없는 구조를 행정이 스스로 만들어 놓는 것이다.
인천시가 해야 할 일은 주민이 정비계획을 요청하거나 제안하기도 전에 개별 사업의 세부적인 건축계획까지 먼저 검토하는 것이 아니다. 인천 전체의 주택공급과 도시공간 구조, 교통과 기반시설, 생활권의 변화까지 내다보고 어느 지역을 어떤 방향으로 정비할 것인지 기준을 세우는 것이 광역행정의 역할이다.
그 기준에 따라 구청장이 정비계획을 수립할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그렇게 수립된 계획이 인천 전체의 도시계획과 맞는지를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 주민에게 더 많은 계획을 요구할 것이 아니라 인천시가 더 분명한 정비 방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바로잡아야 할 것은 계획행정의 뒤바뀐 구조다
이제 필요한 것은 사전컨설팅 기간을 조금 줄이거나 제출자료 몇 가지를 덜어내는 정도의 개선이 아니다. 정비계획 수립에서 행정과 주민의 역할부터 다시 바로 세워야 한다.
행정은 어느 지역에 정비계획이 필요한지를 판단하고 필요한 계획을 입안하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 주민이 입안을 요청하거나 제안한다면 구청장은 이를 검토해 정비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인천시장은 인천 전체의 도시계획이라는 관점에서 그 계획을 판단하고 결정해야 한다.
주민에게 시킬 일을 찾을 것이 아니라 시장이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재개발·재건축의 첫 단추는 여기서부터 다시 끼워야 한다. 이제 인천시장이 직접 나서서 바로잡아야 한다.
출처 인천in · 2026.09.01
필자 김철환 / 도시연구소 더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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