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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자신의 늙음을 모른다

버스에서 임산부 배려석을 경로석으로 착각한 경험을 통해, 자신의 나이와 생각의 변화를 늦게 알아차리는 인간의 자기 인식을 성찰한 생활칼럼.

Aug 2, 2026

사람은 자신의 늙음을 모른다

사람은 자신의 나이를 마음속 어딘가에 멈춰 둔 채 살아간다는 말이 있다. 거울 속 얼굴은 분명 세월을 말하고 있는데도, 내 생각만큼은 여전히 서른이나 마흔 살 무렵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다른 사람들은 내 나이를 있는 그대로 보겠지만, 정작 나는 그렇게까지 늙었다고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그래도 아직은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은근히 하며 살아간다. 나 역시 그렇다.

얼마 전 버스에서 있었던 일이다. 자리가 넉넉하게 비어 있어 내리기 편한 쪽 자리에 아무 생각 없이 앉았다. 몇 정거장을 지나자 내 앞에 서 있던 중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학생이 나를 힐끔거리더니 한참을 망설이다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저쪽 자리로 옮기시면 안 돼요?"

순간 주변을 둘러봤다. 빈자리가 많은데도 왜 나에게 그런 말을 하나 싶었다. 그제야 내가 경로석에 앉아 있어서 옮기라는 뜻인 줄 알았다.

이미 내릴 곳도 얼마 남지 않았고 굳이 자리를 옮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괜찮아. 그냥 여기 앉아 있어도 돼."라고 대답했다.

속으로는 조금 흐뭇하기도 했다. 저 학생 눈에도 내가 아직 경로석에 앉을 나이로 보이지는 않는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용기를 내어 말을 건 학생도 기특하게 느껴졌다.

버스에서 내리며 자리를 다시 보았다.

그제야 알았다.

내가 앉아 있던 곳은 경로석이 아니라 임산부 배려석이었다.

혼자 경로석이라고 생각하고, 아직은 그렇게 나이 들어 보이지 않는다고 흐뭇해했던 셈이다.

그 일을 떠올리면 지금도 피식 웃음이 난다. 사람은 자신의 나이를 생각보다 늦게 받아들이는지도 모르겠다.

나이만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의 생각과 태도가 어느새 달라졌다는 사실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한다. 여전히 예전과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고집스럽고 낡은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요즘 자주 듣는 '꼰대'라는 말도 새삼 다르게 다가온다.

나는 오랫동안 꼰대란 나이가 많은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한다. 꼰대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자신은 변하지 않았다고 믿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예전 방식만이 옳다고 믿고, 왕년의 경험을 기준으로 지금을 판단하며, 새로운 세대의 생각을 이해하기보다 먼저 틀렸다고 말하는 사람. 그런 모습이 꼰대라고 불리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도 모르게 과거의 경험을 기준으로 현재를 판단하고, '우리 때는 말이야'라는 생각을 품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어쩌면 그것이 나이 드는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른다. 문제는 늙는 것이 아니라, 늙지 않았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거울은 주름을 보여 주지만, 생각의 주름은 스스로 들여다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나이는 누구나 먹는다. 그러나 생각까지 함께 늙게 둘 것인지는 결국 자신의 몫이다.

출처 인천in 생활칼럼 · 2026-08-02
필자 김철환 / 더원(TOAA)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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