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연구소 더원
정비사업 구조 상담

AI 시대, 재개발·재건축사업의 출발점부터 달라져야 한다

AI는 재개발·재건축사업의 설계·시공 기술을 넘어 사업 초기의 판단구조를 바꿀 수 있다. 행정이 정비 필요성과 사업성을 구분해 분석하고 주민에게 검증 가능한 기초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더원
더원 Oct 23, 2026

노르웨이 오슬로의 반쿤스텐 아파트와 주변 도시경관. 이 아파트 건설사업에서는 AI를 활용해 다양한 공정계획 대안을 검토했다. /사진=Helge Høifødt·Wikimedia Commons(CC BY-SA 4.0)

인공지능(AI)이 건설과 부동산 개발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노르웨이 오슬로의 한 아파트 건설사업에서는 AI를 활용해 기존 공정계획보다 공사기간을 104일 단축할 수 있는 대안을 도출했다. 덴마크 코펜하겐에서는 건축물의 배치와 일조, 바람, 소음 등을 분석하는 데 AI를 활용했다. 국내에서도 건축법규와 용적률, 일조 조건 등을 반영해 건축물 배치와 세대수를 분석하는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히 설계와 시공 기술의 발전에 그치지 않는다. 재개발·재건축사업에서도 AI를 활용해 기존의 사업 추진 방식과 행정의 의사결정 구조를 바꿀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고 있다. 특히 주목해야 할 부분은 정비사업이 시작되는 초기 단계다.

■ 정비의 필요성보다 사업성이 앞서는 구조

재개발·재건축사업은 노후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도시기능을 회복하기 위한 사업이다. 그러나 실제 사업 현장에서는 정비의 필요성보다 사업성이 먼저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사업성이 높은 지역은 추진 주체들이 경쟁적으로 사업을 추진하는 반면, 주거환경이 열악하더라도 사업성이 부족한 지역은 정비가 지연되거나 추진 자체가 어려워진다.

사업 초기의 주민 갈등도 이러한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정비구역 지정 이전부터 서로 다른 추진 주체들이 확정되지 않은 용적률과 건축계획, 충분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사업성 추정치를 제시하며 주민 동의 확보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주민들은 어떤 계획이 실현 가능한지, 실제 부담해야 할 비용이 얼마인지 충분히 알지 못한 상태에서 사업 추진 여부를 판단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제시되는 조감도와 예상 세대수, 추정 분담금은 확정된 사업계획이 아니다. 그럼에도 주민들은 이를 사업의 결과처럼 받아들이기 쉽다. 이후 정비계획과 건축계획이 구체화되고 공사비와 사업비가 달라지면 초기의 기대와 실제 사업성 사이에 차이가 발생한다. 결국 사업 초기의 정보 부족과 이해관계 충돌이 장기간의 주민 갈등으로 이어지는 구조다.

■ 주민의 참여가 행정의 계획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은 정비계획의 입안과 정비구역 지정을 행정기관의 권한으로 규정하고 있다. 인천의 경우 일반적인 정비사업에서는 구청장이 정비계획을 입안하고 인천시장이 정비구역을 지정하는 구조다. 법률은 주민에게도 정비계획 입안을 요청하거나 제안할 수 있는 경로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주민의 입안요청이나 입안제안은 행정의 계획적 판단과 책임을 대신하는 제도가 아니다. 주민이 사업을 추진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더라도 해당 지역의 정비 필요성, 도시계획적 타당성, 기반시설의 적정성 등을 검토하고 정비계획에 반영하는 것은 행정의 역할이다.

문제는 실제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이러한 판단에 필요한 상당한 검토와 비용이 주민에게 먼저 요구되는 구조다. 주민들은 정비구역 지정 이전부터 사업성 분석과 건축계획 검토 등에 비용을 부담하고, 전문업체에 의존해 사업의 가능성을 판단하는 경우가 많다. 행정이 수행해야 할 공공적 판단과 주민이 부담해야 할 사업 추진 준비의 경계가 불분명해지는 것이다.

AI 시대에는 이러한 운영 방식부터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행정이 주민의 제안서를 기다렸다가 검토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정비가 필요한 지역의 현황과 계획적 대안을 선제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 AI는 정비 필요성과 사업성을 구분하는 판단 도구가 될 수 있다

AI와 공간정보 기술을 활용하면 건축물의 노후도, 토지이용 현황, 도로와 공원 등 기반시설, 인구와 주택시장 자료를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정비가 필요한 지역을 파악하고 다양한 개발 조건에 따른 사업 추진 가능성을 비교할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정비 필요성과 사업성을 구분해 판단하는 것이다. 노후 건축물이 밀집하고 기반시설이 부족한 지역이라고 해서 반드시 민간 개발사업의 수익성이 높은 것은 아니다. 반대로 사업성이 양호하다는 이유만으로 공공의 정비 우선순위가 높다고 볼 수도 없다.

따라서 행정은 먼저 주거환경과 안전, 기반시설 등을 기준으로 정비 필요성을 판단하고, 그다음 사업성 분석을 통해 민간사업으로 추진할 수 있는 지역과 공공지원이 필요한 지역을 구분해야 한다. AI는 이러한 판단에 필요한 자료를 분석하고 대안을 비교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사업성이 부족한 지역에 대해서는 기반시설 투자, 공공재정 지원, 적정한 도시계획적 인센티브, 공공참여 방식 또는 대안적 주거환경 개선방안 등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AI가 낮은 사업성을 자동으로 높여주는 것은 아니다.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어떤 정책적 지원을 할 것인지는 공공이 결정해야 한다.

■ 주민에게 필요한 것은 홍보자료가 아니라 검증 가능한 정보다

정비사업 초기 주민들이 접하는 정보는 사업 추진 주체나 용역업체가 제시하는 자료에 크게 의존한다. 동일한 지역이라도 적용하는 용적률과 건축계획, 공사비와 분양가에 따라 사업성 분석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가정과 산정 근거가 주민들에게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공공이 AI를 활용해 정비사업 초기의 기초 진단자료를 제공한다면 이러한 정보 격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법령과 도시계획 기준을 전제로 여러 건축계획 대안을 비교하고, 공사비나 분양수입 등 주요 조건이 달라질 때 사업성이 어떻게 변하는지 분석하는 방식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특정한 용적률이나 예상 분담금을 확정된 결과처럼 제시하지 않는 것이다. AI가 생성한 계획은 인허가를 받은 정비계획이 아니며, 초기 사업성 분석 역시 실제 주민 분담금을 확정하는 자료가 아니다. 분석에 적용한 조건과 가정, 불확실성을 함께 공개해야 한다.

또한 AI의 분석 결과는 전문가의 검증을 거쳐야 한다. 건축물의 구조적 안전성 판단이나 종전자산 평가, 법률적 적정성 검토까지 AI가 대신할 수는 없다. AI는 행정과 전문가의 판단을 지원하는 수단이지 법적 책임을 대신하는 주체가 아니다.

이러한 공통의 기초정보가 제공된다면 주민들은 서로 다른 추진 주체의 주장만 비교하는 데서 벗어나 사업의 가능성과 위험을 보다 합리적으로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 새로운 절차보다 기존 정비계획 체계의 변화가 필요하다

AI 활용을 위해 별도의 사전심사나 주민 부담 절차를 추가하는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 정비사업 초기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기술이 오히려 새로운 행정절차와 용역비 부담을 만드는 결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AI 기반 기초 진단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에 따른 도시·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과 정비계획 입안 체계 안에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방자치단체가 정비기본계획을 수립하거나 재정비하는 과정에서 지역별 노후도와 기반시설, 정비 필요성 및 사업성 등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정비계획 입안 단계의 기초자료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기관이 활용할 수 있는 공간정보와 건축물 자료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분석 결과에 대한 전문가 검증과 주민 의견수렴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와 분석자료의 공개 범위도 함께 정해야 한다.

무엇보다 분석 결과가 실제 행정의 판단으로 이어져야 한다. 정비 필요성이 높은 지역에 어떤 계획을 수립할 것인지, 사업성이 부족한 지역에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 주민에게 어느 범위까지 정보를 제공할 것인지를 결정하는 책임은 행정기관에 있다.

AI를 도입하는 목적은 행정의 책임을 기술에 넘기는 것이 아니다. 행정이 본래 수행해야 할 계획적 판단을 보다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수행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 AI 시대에 바뀌어야 할 것은 기술보다 정비사업의 출발 구조다

재개발·재건축사업은 단순히 노후 건축물을 철거하고 새로운 아파트를 공급하는 사업이 아니다. 도시기능을 회복하고 주거환경을 개선하는 공공적 성격의 사업이다. 그러나 정비의 필요성보다 민간의 사업성이 먼저 작용하고, 사업 초기의 판단과 비용이 주민에게 집중되는 구조에서는 이러한 목적을 충분히 실현하기 어렵다.

AI는 정비사업의 출발점을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수단이다. 공공이 정비 필요성을 먼저 진단하고, 사업 가능성과 위험을 분석하며, 주민에게 검증 가능한 기초정보를 제공하는 체계로 전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업성이 부족한 지역에 대해서도 공공의 지원 필요성을 보다 체계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AI를 얼마나 빠르게 도입하느냐가 아니다. AI를 활용해 정비사업의 초기 판단 구조와 공공의 역할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이다.

AI가 도시의 미래를 다양한 조건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시대에, 재개발·재건축사업의 출발점을 언제까지 주민의 동의 경쟁과 민간의 사업성 판단에만 맡겨둘 것인가.

출처 인천in 칼럼 · 2026-10-23
필자 김철환 / 더원(TOAA) 대표
원문 보기 →

추천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