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용지 부족 논란, 같은 사회 다른 기준
기업 마케팅 논란과 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대한 사회적 반응의 온도차를 통해, 사안에 따라 달라지는 잣대가 아니라 진영을 떠난 일관된 공적 원칙이 필요함을 짚은 칼럼.
현상이 아닌 의도를 단정하는 여론의 과열
사회적 논란이 발생하면 비판은 필요하다. 기업도 공공기관도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문제는 책임을 묻는 기준이 아니라, 그 기준이 얼마나 일관되게 적용되느냐에 있다.
최근 불거진 스타벅스의 마케팅 논란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은 기업의 경솔함을 지적했다. 충분히 가능한 비판이다. 사회적 영향력이 큰 글로벌 기업이라면 더욱 신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논란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단순한 실수나 판단 착오의 문제를 넘어 역사적 의미와 정치적 의도까지 연결하는 해석이 쏟아졌다. 잘못을 지적하는 것과 의도를 단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임에도 당시에는 그 경계가 쉽게 무너졌다.
사안은 달라도 공적 기준은 같아야 한다
반면 최근 선거 현장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대하는 사회적 반응은 과거 다른 논란들과 비교해 확연한 온도차이를 보이고 있다. 기업의 마케팅 논란과 국가의 선거 관리 문제는 비교 대상조차 아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선거는 국민의 참정권과 직결되는 가장 엄숙한 공적 절차이며, 선거관리 과정에서 발생한 부실은 그 어떤 사안보다 더욱 엄격하게 평가되어야 마땅함에도 그렇다.
물론 투표용지 조기 소진이 곧바로 조직적 선거 부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행정의 부실과 부정선거는 엄격히 구별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안의 심각성까지 희석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기 위해 늘어선 줄 앞에서 필요한 투표용지가 제때 공급되지 못했다면, 그 자체로 민주주의 시스템의 중대한 행정 실패다. 사안의 중대성만 놓고 본다면 훨씬 더 엄격한 검증과 책임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사안이라고 볼 수 있다.
확대와 축소의 반복이 낳는 신뢰의 붕괴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기이한 현상이 반복된다. 과거 사기업의 작은 단서 하나에는 온갖 정치적 의미와 숨은 의도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던 이들이, 국가 제도의 중대한 관리 부실 앞에서는 갑자기 "의도 추정을 경계하자"며 극도의 신중함을 이야기한다.
문제는 진영의 주장이 아니라, 같은 사회 안에서 어떤 사안은 끝없이 확대되고 어떤 사안은 조용히 축소되는 '고무줄 잣대'가 반복된다는 점이다. 국민이 느끼는 피로감도 바로 이 지점이다. 왜 어떤 문제는 사회적 분노의 대상이 되고, 어떤 문제는 해프닝으로 덮이려 하는가. 왜 어떤 경우에는 의도를 이야기하고, 어떤 경우에는 의도를 말하지 말라고 하는가. 이 질문에 설득력 있는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사회적 신뢰는 점점 약해질 수밖에 없다.
필요한 것은 진영의 이익이 아닌 일관된 잣대다
사회는 특정 진영의 유리함에 따라 운영될 수 없다. 기업의 실수는 실수로, 공공의 부실은 부실로 있는 그대로 평가하면 된다. 숨은 의도가 의심된다면 명확한 증거를 통해 판단하면 그만이다. 중요한 것은 누구의 잘못인가가 아니라 어떤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는가이다.
작은 일은 부풀리고 큰 일은 덮어버리는 사회에서는 그 어떤 공적 판단도 신뢰받기 어렵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한 거친 목소리가 아니라, 정치적 진영이나 사안의 성격을 떠나 누구에게나 자로 잰 듯 동일하게 적용되는 일관된 원칙이다.
출처 인천in 칼럼 · 2026-06-08
필자 김철환 / 더원(TOAA)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