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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비사업 구조 상담

재개발·재건축, 인허가권을 옮기는 것이 공급대책인가

재개발·재건축의 공급 속도를 높이기 위해 정비구역 지정권을 옮기는 방식이 실질적 해법인지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주요 인허가권은 이미 구청장에게 있다는 구조와 인천의 사전컨설팅 사례를 통해, 권한이양보다 불필요한 절차를 없애고 현행법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행정구조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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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원 Aug 26, 2026

■ 주택공급을 늦추는 것은 인허가권자의 위치가 아니다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주택공급을 앞당기기 위해 일정 규모 이하 정비사업의 정비구역 지정권을 광역자치단체장에서 기초자치단체장에게 이양하자는 논의가 나오고 있다. 지역 사정을 잘 아는 기초자치단체가 직접 결정하면 행정절차가 빨라지고 주택공급도 앞당길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인허가권자가 바뀐다고 주택이 빨리 공급되는 것은 아니다. 같은 정비계획을 수립하고 같은 내용을 검토하며 같은 정비구역 지정절차를 거친다면, 결정권자만 바꾸는 것으로 사업기간이 얼마나 단축되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같은 인허가를 그대로 둔 채 누가 결정할지만 바꾸는 것은 절차개선이라기보다 권한의 이동에 가깝다.

동일한 법과 기준을 적용하는데 인허가권자가 누구냐에 따라 사업의 속도가 크게 달라진다면 그것 자체가 문제다. 그렇다면 손봐야 할 것은 권한의 위치가 아니라 인허가 구조다.

필자가 공직에 있을 당시 국토교통부 회의에서도 비슷한 논의를 접한 적이 있다. 정비사업 통합심의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광역단체가 통합심의를 담당한다면 구청장이 가진 사업시행계획인가권까지 광역단체로 가져가는 것이 효율적이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제시됐다. 당시 필자는 이에 반대했다.

이유는 지금과 같다. 통합심의의 목적은 사업시행계획인가 전에 거쳐야 하는 여러 심의를 한꺼번에 처리해 중복과 대기시간을 줄이는 데 있다. 심의를 통합하는 것과 인허가권자를 바꾸는 것은 다른 문제다. 필요한 절차를 통합하는 것이 절차개선이지, 그 절차를 담당한다는 이유로 다른 인허가권까지 옮기는 것이 절차개선은 아니다.

지금은 방향만 반대다. 당시에는 효율성을 이유로 기초단체의 인가권을 광역단체로 가져가는 방안이 거론됐다면, 지금은 공급 속도를 이유로 광역단체의 정비구역 지정권을 일정 규모 이하에서 기초단체로 넘기자는 논의가 나온다. 권한이 위로 가느냐 아래로 가느냐만 다를 뿐, 절차의 문제를 권한의 위치에서 해결하려 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 이미 사업 추진의 주요 인허가권은 구청장에게 있다

재개발·재건축의 행정구조를 정확히 볼 필요가 있다. 광역시장이 정비사업의 모든 인허가를 하는 것이 아니다. 광역시의 경우 사업 초기 정비계획을 결정하고 정비구역을 지정하는 것은 광역시장이지만, 이후 조합설립인가와 사업시행계획인가, 관리처분계획인가 등 사업을 실제로 추진하는 주요 인허가는 구청장이 담당한다.

따라서 지금 논의되는 것은 정비사업의 인허가권을 통째로 구청장에게 넘기는 문제가 아니다. 광역시의 경우 사업 추진의 주요 인허가권은 이미 구청장에게 있다. 핵심은 사업 초기의 정비계획 결정과 정비구역 지정에 부여된 광역적 계획·조정 기능까지 일정 규모 이하에서는 구청장에게 넘길 것인가에 있다.

그렇다면 왜 정비사업의 여러 행정처분 가운데 사업 초기의 정비계획 결정과 정비구역 지정은 광역적 판단구조로 두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정비구역 지정이 개별 사업지만이 아니라 주변지역과 도시공간구조, 기반시설, 교통 등을 함께 판단하기 위한 계획행정이라면 그 목적은 분명하다.

광역적 계획과 조정이 필요해서 정비구역 지정권을 광역단체장에게 부여했다면 단순히 세대수를 기준으로 그 권한을 나누는 것이 제도의 목적에 부합하는지 따져봐야 한다. 반대로 일정 규모 이하에서는 광역적인 계획과 검토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다면 결정권자만 바꿀 것이 아니라 왜 동일한 정비계획과 정비구역 지정절차를 그대로 유지해야 하는지부터 물어야 한다.

■ 권한을 바꿀 것이 아니라 필요한 절차인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현행 법체계도 모든 정비사업에 똑같은 계획체계를 적용하지는 않는다. 일정 규모와 요건을 갖춘 소규모주택정비사업은 일반적인 재개발·재건축과 다른 사업구조를 두고 있다. 규모와 특성에 따라 별도의 절차를 설계한 것이다.

일정 규모 이하의 일반 정비사업도 광역적 계획 판단이 필요하지 않다고 본다면 같은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 어떤 절차를 없앨 수 있는지, 어떤 심의를 통합할 수 있는지, 어떤 절차를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지를 검토하면 된다. 권한이양과 절차간소화는 전혀 다른 문제다.

주택공급을 앞당기려면 바로 이런 부분을 손봐야 한다. 불필요한 절차는 없애고, 필요한 절차는 통합해야 한다. 반드시 필요한 인허가라면 왜 필요한지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를 분명히 해야 한다.

■ 법을 바꾸기 전에 현행법부터 제대로 작동시켜야 한다

더 근본적인 문제도 있다. 정부가 정비사업의 공급 속도를 높이겠다면 정비구역 지정권을 누구에게 넘길 것인가를 논하기 전에 현행 법률이 지방정부에서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인천의 사례가 그렇다. 정비계획 입안권자가 지역의 정비 필요성을 검토하고 정비계획을 입안하기보다 주민의 입안제안에 의존하는 수동적인 구조가 형성되어 있다. 주민이 사업을 추진하려면 먼저 전문업체의 도움을 받아 사업의 틀을 만들고 각종 계획자료를 준비해야 하는 구조다.

여기에 법정 정비계획 입안절차에 들어가기 전 ‘사전컨설팅’이라는 별도의 절차까지 운영되고 있다. 주민 지원을 위한 사전검토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정비계획 입안제안을 접수하기 위한 사실상의 선행 관문으로 작동하면서 1년 이상이 소요된다.

문제는 단순히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데 있지 않다. 정비계획 입안단계에서 판단할 사항과 이후 사업시행 과정에서 검토할 사항이 구분되지 않은 채 각종 자료와 검토가 선행되면 주민은 법정절차가 시작되기도 전에 전문용역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비계획 입안과 직접 관련성이 낮은 후속 인허가 사항까지 앞당겨 검토하는 것은 행정지원이 아니다.

주민제안은 주민이 정비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만든 제도이지 행정의 계획수립 책임을 주민에게 넘기는 장치가 아니다. 행정이 해야 할 판단까지 주민에게 먼저 검토하고 입증하도록 한다면 주민의 전문업체 의존은 커지고, 법정절차가 시작되기도 전에 사업의 이해관계가 먼저 형성될 수 있다.

정부가 먼저 살펴야 할 것은 이런 부분이다. 지방정부가 법에서 예정하지 않은 절차를 사실상 의무적인 선행절차로 운영하고 있지는 않은지, 정비계획 입안과 직접 관계없는 사항까지 주민에게 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부터 점검해야 한다. 지방정부가 이러한 비정상적인 행정관행을 스스로 바로잡지 못한다면, 정부가 현행법의 취지에 맞게 운영되고 있는지를 점검하고 정상화해야 한다.

■ 법정절차 이전의 1년이 사업의 10년, 20년을 좌우할 수 있다

정비사업 초기 단계에서 허비되는 1년은 사업 후반부의 1년과 성격이 다르다. 정비구역도 지정되지 않고 조합도 설립되지 않은 단계에서는 주민의 조직과 의사결정 구조가 충분히 형성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정보와 전문성도 부족하다.

이 시기에 행정이 방대한 계획자료와 전문적인 검토를 요구하면 주민은 이를 수행할 업체를 먼저 찾게 된다. 어떤 업체가 사업성 검토를 하고 계획안을 만들며 주민조직과 관계를 형성하느냐에 따라 사업 초기의 이해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다. 공식적인 정비사업의 틀이 만들어지기 전에 비공식적인 이해관계가 사업을 선점할 수 있는 구조다.

따라서 사전컨설팅에 1년이 소요되는 문제를 단순히 ‘사업기간이 1년 늘어난다’는 차원에서만 봐서는 안 된다. 정비사업은 10년, 20년이 걸리는 장기사업이다. 법정절차 이전에 형성된 업체와 주민조직의 이해관계가 이후 정비계획과 조합설립, 사업 추진과정에 계속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불필요한 사전절차가 이런 구조를 만든다면 단순한 행정지연의 문제가 아니다. 특정 전문업체와 이해관계가 사업 초기부터 고착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문제다. 정부가 정비사업의 불투명한 이해관계와 카르텔 구조를 타파하려 한다면 바로 이런 사업 초기의 구조부터 들여다봐야 한다.

■ 권한을 옮길 것이 아니라 인허가 구조를 정상화해야 한다

재개발·재건축의 공급을 앞당기는 해법은 권한을 위로 올리거나 아래로 내리는 데 있지 않다. 필요 없는 절차는 과감하게 없애고, 중복되는 절차는 통합하며, 동시에 진행할 수 있는 절차는 병행해야 한다. 필요한 인허가는 그 제도를 둔 목적에 맞게 작동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반드시 새로운 법을 만들어야 가능한 것도 아니다. 법적 근거가 불명확한 사전절차를 정비하고, 정비계획 단계와 후속 인허가 단계의 검토사항을 구분하며, 법이 부여한 입안권자가 자신의 책임에 따라 판단하도록 만드는 것만으로도 개선할 수 있다.

광역적 도시계획 판단이 필요해서 정비구역 지정권을 광역단체장에게 두었다면 그 기능을 단순한 세대수만으로 나누어서는 안 된다. 반대로 일정 규모에서는 그러한 판단이 필요하지 않다면 권한만 넘길 것이 아니라 정비계획과 구역지정 절차 자체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정부가 정비사업의 속도를 높이려 한다면 정비구역 지정권을 누구에게 줄 것인가부터 논의할 일이 아니다. 현행법이 제대로 작동하는지부터 살펴야 한다. 법정절차 앞에 불필요한 절차를 하나 더 만들어 주민을 기다리게 하고, 그 과정에서 사업 초기의 이해관계가 먼저 형성되는 구조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정비사업의 10년, 20년은 정비구역 지정 이후에만 결정되지 않는다. 법정절차가 시작되기도 전에 만들어진 이해관계가 사업 전체를 좌우할 수 있다. 정부가 먼저 손봐야 할 것은 인허가권자의 위치가 아니라 불필요한 절차와 비정상적인 사업구조다. 권한을 옮기기 전에 법대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 먼저다.

출처 인천in · 2026-08-26
필자 김철환 / 도시연구소 더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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