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연구소 더원
정비사업 구조 상담

원도심의 기억, 주민의 희생으로 지켜야 하는가

원도심의 오래된 건축물과 공간을 보존할 때 객관적인 가치평가와 공공의 책임이 왜 필요한지 살펴본다. 보존의 필요성과 정비사업 주민의 생활·재산상 부담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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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원 Oct 7, 2026

개항 이후 인천의 역사가 쌓인 배다리와 싸리재, 광복 이후 형성된 헌책방 거리 등 원도심의 역사와 흔적을 지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다. 인천에 살면서도 이곳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고, 오래된 극장과 시장, 골목의 모습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 역시 그 마음을 이해한다. 고등학생 시절 배다리 헌책방 거리를 자주 찾았고, 그 시절 거리의 풍경은 지금도 정겨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벌써 40년이 훌쩍 지났지만, 지금도 당시를 함께한 친구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점심을 먹고 인천의 오래된 길을 찾아가 걸으며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그러나 한 장소에 대한 추억과 애정이 그곳을 어떤 방식으로 보존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될 수는 없다. 배다리와 싸리재를 개발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곳의 변화를 아쉬워하는 마음만으로 다른 정비사업 구역의 개별 건축물까지 충분한 검토 없이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된다.

정비사업 현장에서는 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던 건축물이 뒤늦게 보존 논란의 중심에 놓이는 경우가 있다. 평소에는 보존 대상이라는 사회적 합의도 없었고, 공공의 조사나 관리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주민들이 재개발을 추진하면 그때부터 오래되었다는 이유로 역사성과 장소성이 강조되고, 사업계획을 변경해 건축물을 남겨야 한다는 요구가 제기된다.

공식적인 보존 대상으로 지정되거나 등록되지 않았더라도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미처 알려지지 않았던 가치가 새롭게 확인될 수 있다. 문제는 객관적인 조사와 가치평가 없이 ‘오래되었다’거나 ‘추억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보존을 요구하는 데 있다. 더구나 보존으로 인한 사업 지연과 추가 비용까지 주민이 감당해야 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문제다.

보존을 요구하려면 먼저 무엇을 왜 보존해야 하는지 분명해야 한다. 건축적 가치가 있는지,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과 직접 관련되는지 등을 객관적으로 살펴야 한다. 건축물이 오래되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보존 대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보존 필요성이 확인되더라도 건축물 전체를 반드시 원형 그대로 남기는 것만이 답은 아니다. 현 위치에 보존할 것인지, 중요한 부분만 남길 것인지, 이전·복원하거나 기록으로 보존할 것인지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보존 방식은 건축물의 가치뿐 아니라 주민의 생활환경과 지역의 안전, 정비사업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해 결정해야 한다.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은 주민과 개발업자를 인위적으로 나누는 시선이다. 재개발을 외부 사업자가 주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밀어붙이는 개발로만 보는 것은 현실과 다르다. 재개발사업은 대개 노후한 주택과 열악한 기반시설을 개선하려는 소유자와 주민의 요구에서 출발한다.

외부인에게 오래된 골목과 건축물은 옛 정취를 느끼는 공간일 수 있다. 그러나 노후한 주택과 협소한 도로, 부족한 주차장과 낡은 기반시설을 매일 감당하는 주민에게 그곳은 관람의 대상이 아니라 삶의 터전이다. 보존의 가치를 말하면서 주민이 겪는 불편과 위험을 충분히 살피지 않는다면, 보존에 따른 부담을 특정 지역 주민에게 떠넘기는 결과가 된다.

보존할 가치가 있는 건축물과 공간을 사회가 지켜야 한다면, 누가 어떤 책임을 질 것인지도 분명히 해야 한다. 공공이 보존을 요구하면서 사업계획 변경에 따른 손실과 유지관리 부담을 주민에게만 맡기는 것은 정당하다고 보기 어렵다. 공익을 위한 재산권 제한에는 명확한 기준과 합리적인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행정은 정비사업이 시작되기 전에 보존을 검토할 건축물과 공간을 조사하고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사업이 시작된 뒤 새롭게 보존 가치가 제기된다면 공개된 기준에 따라 그 가치와 보존 필요성을 신속하게 판단해야 한다. 객관적인 가치와 보존 방향이 확인되지 않은 건축물에 역사성과 장소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사업을 지연시키고 주민의 부담을 가중해서는 안 된다.

도시는 과거의 기억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정비를 이유로 보존할 가치를 모두 지워서도 안 된다. 필요한 것은 개발과 보존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는 일이 아니다. 보존할 가치를 사전에 찾아내 그 필요성과 방향을 명확히 정하고, 정비가 필요한 지역에서는 주민이 안전하고 쾌적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도시의 기억은 소중하다. 그러나 객관적인 조사와 구체적인 근거 없이 오래된 건축물에 ‘역사성’과 ‘장소성’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존 가치를 기정사실화하고, 이를 이유로 사업을 지연시키며 주민에게 일방적인 부담을 지우는 것은 책임 있는 보존정책이라고 보기 어렵다.

출처 인천in · 2026.10.07

필자 김철환 / 도시연구소 더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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